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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키스트 던전 숨은 반전 (스토리, 스트레스, 난이도)

by 하우비리치 2026. 4. 19.

다키스트 던전

 

사는 게 너무 순탄하다 싶을 때 저는 일부러 어려운 걸 찾게 됩니다. 그러면 제가 손에 쥐어드리겠습니다. 바로 다키스트 던전을 말이죠. 이 게임은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정면으로 부딪히는 게임입니다. 처음엔 몰랐죠... 한 전투에서 레벨 6 영웅 4명을 한꺼번에 잃고 나서야, 이 게임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스토리가 숨긴 반전, 사실 악당은 당신이었다

다키스트 던전의 스토리는 "악을 무찌르고 가문을 구한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조가 고대의 어둠을 깨웠고, 후손인 플레이어가 영지를 되찾으러 오는 서사. 1편에서 2편으로 넘어가면 이 구도는 완전히 뒤집힙니다.

 

2편의 주인공은 고고학과 신비주의를 연구하던 제자입니다. 철의 왕관(Iron Crown)이라는 고대 상징을 완성하겠다는 집착이 결국 우주의 축을 뒤틀어버렸고, 세계 멸망의 도화선이 된 원흉은 다름 아닌 플레이어 자신이었습니다. 여기서 철의 왕관이란 고대 제국의 도상화 곳곳에 숨겨진 공통 상징으로, 완벽한 인간성을 등식으로 구현하겠다는 그릇된 야망의 산물입니다.

 

이 게임이 단순한 던전 탐험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스토리는 관심 없었습니다. 게임 내 나레이션이 라틴어 느낌의 낭독으로 쏟아지다 보니 '분위기 게임이구나' 하고 넘겼는데, 2편에서 캐릭터 회상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반전이 되니 재밌습니다. 광대, 역병사, 노상강도, 도굴꾼. 이 영웅들이 전부 과거로부터 도망친 실패자들이고, 그 여정 자체가 죄를 마주하는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게임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스트레스 시스템, 재미있는 고통의 설계

다키스트 던전을 다른 턴제 RPG와 구분 짓는 핵심은 어파이션(Affliction) 시스템입니다. 어파이션이란 캐릭터의 스트레스 수치가 100을 초과했을 때 발동하는 정신 붕괴 상태를 말합니다. 이 상태가 되면 캐릭터가 동료의 힐을 거부하거나, 혼자 공격을 하거나, 심하면 전투 중 퇴장을 선언해 버립니다.

 

이건 단순한 디버프가 아닙니다. 성경 구절을 읊어대던 성전사가 몇 번의 원정을 거치고 나면 도벽에 중독되고 분노조절장애가 생깁니다. 이 게임을 하면 제가 사춘기 자녀를 돌보는 것 같습니다. 포켓몬이 몬스터를 수집하는 게임이라면, 다키스트 던전은 정신질환을 수집하는 게임이라는 표현이 딱 맞을 겁니다.

 

2편에서는 관계도(Relationship) 시스템이 추가됩니다. 관계도란 파티 내 영웅들 간의 감정 상태를 수치화한 것으로, 원정이 반복될수록 질투, 불신, 분노 같은 부정적 관계가 쌓여 원정 자체를 파국으로 몰기도 합니다. 제가 원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관계로 발전한 두 캐릭터를 보며 당황한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다키스트 던전이 설계한 스트레스의 메커니즘은 실제 심리학적 개념과도 닿아 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반복적인 고강도 스트레스 노출은 회피 행동과 감정 조절 장애를 유발한다고 밝혀져 있습니다(출처: 대한불안의학회). 게임이 이를 완벽하게 구현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캐릭터들이 던전을 반복할수록 망가져가는 방식은 그 개념을 꽤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키스트 던전의 난이도를 수치로 보면 그 잔인함이 더 명확해집니다.

  • 게임 클리어 업적 달성률: 전체 플레이어의 0.35%
  • 칠흑(Stygian/Bloodmoon) 난이도 클리어 달성률: 0.2%
  • 95% 확률 공격이 빗나간 경험: 제가 직접 겪은 횟수로만 열 손가락이 모자랍니다

이 수치가 말해주는 건 게임이 어렵다는 것이 아닙니다. 해당 수치의 주인공이 저 자신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절망의 포효를 외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에게 남은 것이라곤 기도하는 방법뿐입니다. 추가로 95% 확률 검증 들어가야 됩니다.


난이도 설계, 이 게임이 진짜 하고 싶은 말

다키스트 던전의 난이도는 1차원 적인 어려움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절망'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냅니다. 

 

이 제작자의 의도 속에서 저는 중소기업 사장처럼 플레이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정에 휩쓸리면 안 됩니다. 왜냐면 제가 정성스레 키운 영웅이 가장 먼저 죽습니다. 제가 얼마나 여러 번 당했는지 모릅니다. 정성스럽게 키운 캐릭터가 가장 먼저 죽는 것은 이 게임의 법칙입니다. 캐릭터 이름을 친한 친구 이름으로 설정해 놓으면 게임이 훨씬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실제로 해봤는데, 추천하지 않습니다.

 

게임 심리학 측면에서 분석해 봤는데, 다키스트 던전은 조작 불가능한 변수(운)와 조작 가능한 변수(전략)를 의도적으로 뒤섞어 좌절과 성취감의 사이클을 만듭니다. 이와 관련하여 게임 연구 분야에서는 도전 기반 동기 이론(Challenge-based Motivation Theory)이 자주 언급됩니다. 도전 기반 동기 이론이란 난이도가 적절히 높을 때 플레이어의 몰입도와 성취 욕구가 극대화된다는 이론으로, 게임 디자인 연구에서 핵심 개념으로 다뤄집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전투 시간이 30%라면 나머지 20%는 인벤토리를 정리하고 50%는 어떤 던전을 돌지 고민하는 시간입니다. 이 관리의 재미가 없으면 다키스트 던전은 그냥 고통입니다. 재미있으면 돈 주고 사는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리고 저는 후자였습니다.

 

뉴비라면 한 가지만 기억하세요. 횃불을 아끼지 말 것. 횃불 수치가 낮아질수록 전투 난이도와 스트레스 누적 속도가 급격히 올라갑니다. 아끼다가 던전 안에서 무너지는 경험을 저도 여러 번 했습니다.

 

결국 이 게임이 하려는 말은 마지막 보스전에서 터집니다. 실패하고 도망쳤던 영웅들이 자신의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싸우는 장면, 비록 처참하게 쓰러지고 아파할지언정 다시 일어서는 것이 인간이라는 메시지. 클리어 업적 달성률 0.35%짜리 게임치고는 꽤 무거운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다키스트 던전 어려워 보이지만 억까를 이겨내고 끝을 보고 나면 뿌듯함이 찾아옵니다. 어떤 느낌이냐면  불닭볶음면처럼 고통스럽지만 자꾸 손이 가는 게임입니다. 몇 년 동안 이렇게 화났던 게임이 없었는데, 그래도 추천합니다. 단, 튜토리얼에서 죽을 각오는 하고 시작하세요. 저도 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g2v0QLA60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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