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게임을 사기 전에 스팀 복합 평가를 보고도 살 생각이었습니다. 메트로 시리즈가 제 인생 게임 목록에 오른 지 오래됐거든요. 그러다 보니 냉정한 판단보다 기대감이 앞섰는데, 막상 플레이하고 나니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예상보다 훨씬 명확하게 갈렸습니다. 메트로 어웨이크닝을 VR 기기로 직접 플레이한 경험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뜯어보겠습니다.

메트로 세계관을 VR로 구현한 몰입감
메트로 어웨이크닝은 2024년 11월 8일 출시된 VR 전용 타이틀입니다. 개발사는 네덜란드의 버티고 게임스로, 애리조나 선샤인 시리즈와 더폴을 만든 VR 게임 전문 스튜디오입니다. 메트로 시리즈 본가를 개발한 4A 게임즈와는 별개의 회사이며, 세르다르라는 새로운 주인공을 내세운 외전 격 작품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첫인상은 꽤나 강렬했습니다. 게임은 1인칭 시점(FPV, First Person View)으로 진행됩니다. FPV란 플레이어가 마치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처럼 게임 세계를 경험하는 시점 방식인데, VR과 결합하면 360도 전방위로 공간을 실제로 들여다보는 느낌이 납니다. 축축한 콘크리트 벽,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깜박이는 조명,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가이거 계수기 소리까지, 핵전쟁 이후 모스크바 지하철이라는 배경이 VR 특유의 공간감과 맞물려 상당한 압박감을 줍니다.
프레즌스(Presence)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프레즌스란 플레이어가 가상 공간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착각을 느끼는 심리적 몰입 상태를 말합니다. 메트로 어웨이크닝은 이 프레즌스를 끌어올리는 디테일에 특히 공을 들였습니다. 헤드랜턴을 이마에 손을 갖다 대고 켜야 하고, 방독면을 실제로 집어 얼굴에 쓰고 필터를 교체해야 하며, 탄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남은 탄환 수를 어림잡아야 합니다. 화면에 오버레이(HUD, Heads-Up Display)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익숙한 체력 바나 미니맵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관전 모드(Spectator Mode) 지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관전 모드란 게임 화면을 외부에서 보는 사람을 위해 카메라 흔들림을 보정해 주는 기능인데, VR 게임 방송이나 영상 편집 시 멀미를 유발하는 화면 떨림을 크게 줄여줍니다. 이 기능을 지원하는 VR 타이틀이 아직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발사가 방송 환경까지 세심하게 고려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습니다.
전투 시스템, 손맛은 있는데 깊이가 없다
전투는 생존 호러 장르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릅니다. 탄약은 극히 제한적이고 몇 대 맞으면 금방 죽습니다. 쓰러진 적에게서 탄환을 회수해 재활용해야 하고, 수류탄과 근접 공격을 적재적소에 섞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 긴장감만큼은 초반에 제법 잘 작동합니다.
문제는 게임에 등장하는 적의 종류가 지나치게 적다는 점입니다. 제가 플레이하면서 마주친 적은 크게 네 종류로 정리됩니다.
- 러커: 땅굴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한 대 때리고 도망가는 소형 돌연변이
- 노살리스: 덩치가 크고 체력이 높은 대형 돌연변이, 수류탄으로 유인해 처리
- 스캐빈저: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인간 적, 잠입으로 하나씩 제거
- 식인종: 극후반부에 등장, 탄환이 거의 없어 석궁 위주로 상대
AI(인공지능)의 수준도 기대 이하였습니다. 여기서 게임 AI란 적 캐릭터가 플레이어의 행동에 반응해 전술적 판단을 내리는 연산 알고리즘을 말합니다. 러커는 항상 같은 위치의 땅굴에서 나오고, 스캐빈저는 총성이 들리면 시체 주변만 서성이다 하나씩 고개를 내밀기를 반복합니다. 몇 번 리트라이 하면 패턴이 완전히 파악되고 나서는 긴장감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예외적으로 후반부 석궁 구간만큼은 신선했습니다. 화살 회수라는 추가 동선이 생기면서 전략적 사고가 요구됐고, 푸슉 하고 날아가 적을 일격에 쓰러뜨리는 물리적 피드백도 상당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차라리 이 석궁을 주력 무기로 전투 시스템 전체를 설계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레벨 디자인과 반복 구성의 한계
저는 솔직히 레벨 디자인이 이렇게까지 아쉬울 줄은 몰랐습니다. 플레이타임 대부분을 일자로 이어진 지하철역과 철도 구간을 통과하는 데 씁니다. 배경이 지하인 만큼 구성이 단조로울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이전 챕터에서 통과한 구역을 별다른 변화 없이 역방향으로 다시 걸어가도록 만들어 놓은 구간이 너무 많습니다.
선형 내러티브(Linear Narrative) 방식의 게임이라는 점도 아쉬움을 키웁니다. 선형 내러티브란 플레이어의 선택과 관계없이 이야기가 하나의 정해진 흐름으로만 진행되는 구성을 말합니다. 메트로 본편 시리즈가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결말이 달라지는 도덕 포인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어웨이크닝은 그런 분기 요소가 사실상 전무합니다. 그냥 앞으로 걸어가면서 총을 쏘는 것 외에 플레이어가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인터랙티비티(Interactivity) 측면도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인터랙티비티란 플레이어가 게임 환경의 오브젝트나 시스템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방에 놓인 피아노를 두드리거나 빈 술병을 던져 깨는 정도가 가능한 수준에 그쳐, VR 컨트롤러가 가진 잠재력이 상당 부분 낭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프라이프 알릭스가 VR 환경에서 오브젝트와의 창발적 상호작용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꽤 큽니다.
VR 게임의 시장 규모는 아직 제한적입니다. 글로벌 VR 게임 시장 규모는 2023년 기준 약 76억 달러 수준으로 집계되었으며 연평균 약 26% 성장이 예측되고 있습니다(출처: Grand View Research). 시장이 빠르게 크고 있는 만큼, VR 플랫폼을 이끌 타이틀의 필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메트로 어웨이크닝 총평, VR 팬이라면?
게임 전체를 놓고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메트로 어웨이크닝은 VR 테크놀로지가 주는 체험 가치에 집중한 작품입니다. 그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고, 몰입감과 분위기 연출만큼은 상당한 수준으로 구현했습니다. 특히 제가 메트로 시리즈의 세계관을 아는 상태에서 플레이했더니, 친숙한 설정이 VR의 현장감과 만나는 순간만큼은 정말 짜릿했습니다.
하지만 VR 게임 전체를 견인할 대작인가 하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2020년 출시된 하프라이프 알릭스는 출시 4년이 지난 지금도 VR 게임 입문자에게 가장 먼저 추천되는 타이틀입니다(출처: Steam). 어웨이크닝은 그 기준점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게임플레이 설계의 깊이, 레벨의 다양성, AI의 완성도 모두 한 단계 아래라고 봅니다.
결론적으로 이 게임이 어울리는 사람은 명확합니다. VR 기기를 이미 보유하고 있고, 메트로 시리즈에 애정이 있으며, 세계관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는 경험 자체에 가치를 두는 분이라면 할인 시즌에 구입해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습니다. 반면 VR 기기 구매를 검토 중이거나, 탄탄한 게임플레이를 기대하는 분께는 선뜻 권하기 어렵습니다. 석궁 손맛 하나는 확실히 일품이었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VR 기기를 꺼내 들기엔 허들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