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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장관리 리뷰 (쯔구르, 인디호러, 수족관)

by 하우비리치 2026. 5. 22.

야간 알바 제의를 받았을 때 선뜻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가 하나 있습니다. 월급이 세 배라는 말 한마디면 웬만한 불안감은 사라지거든요. 이번에 플레이한 인디 공포게임 어장관리는 딱 그 심리를 정확히 찌릅니다. 직접 해보니 가볍게 시작했다가 마지막에 꽤 묵직한 뒤통수를 맞는 구성이었습니다.


수족관 알바생이 주인공인 쯔구르 공포게임

어장관리는 원치킨 알만툴 게임잼 2026에 출품된 작품으로, 이수찬 님과 민티 님 두 분이 함께 개발했습니다. 쯔구르(RPG Maker) 엔진을 기반으로 제작된 게임인데, 여기서 쯔구르란 RPG 만들기 시리즈를 지칭하는 말로 일본산 게임 제작 툴의 별칭입니다. 2010년대 초중반 이브, 미소녀 연쇄살인범 같은 작품들이 이 엔진으로 만들어지면서 독립 공포게임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죠.

 

주인공의 이름은 정어리입니다. 실제 학명이 사르디노스 멜라노스틱투스인 그 정어리가 맞습니다. 동해와 일본 태평양 연안에 분포하는 청어과 물고기로, 등은 암청색이고 배는 은백색을 띠며 몸길이는 20~25cm 정도입니다. 이름부터 물고기인 주인공이 수족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장의 꼬임에 넘어가 야간 근무를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제가 처음 게임을 켰을 때 솔직히 이건 그냥 귀여운 게임이겠거니 싶었습니다. 주인공 캐릭터 그래픽도 단순하고, 낮 파트 업무 진행도 먹이 주고 개체수 세고 손 씻는 루틴이라 분위기가 꽤 평화롭거든요. 그런데 그 평화로운 전반부가 의도된 설계였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해수어간과 담수어간, 심의어간으로 나뉜 공포 구조

야간 근무를 시작하면 게임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무전기로 안내를 해주는 선배 직원 백상아와 함께 해수어간, 담수어간, 심의어간 세 구역을 순서대로 돌게 됩니다. 여기서 어간(魚間)이란 수족관 내부에서 어류를 관리하는 구역을 지칭하는 게임 내 설정 용어로, 쉽게 말해 물고기별로 분리된 관리 구역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각 구역마다 행동 지침서가 있고, 그 지침을 어기면 즉사하는 구조입니다. 제가 직접 해봤는데 곰치가 보이는 수조에 올라가는 순간 정말 가차 없이 삼켜집니다. 지침서를 꼼꼼히 읽지 않으면 진행 자체가 안 되는 구조라 저장과 불러오기를 꽤 자주 쓰게 됩니다.

 

게임 내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사람을 흉내 내는 문어였습니다. 이 문어는 타 생물을 모방하는 두족류(頭足類)의 실제 생태적 특성을 공포 요소로 활용한 것인데, 두족류란 머리에서 다리가 직접 이어진 구조의 연체동물로 문어와 오징어가 대표적입니다. 게임 속 문어는 보고(복어를 닮은 생물)를 흉내 내다가 곰치를 흉내 내고, 나중에는 사람 형태까지 모방합니다. 말을 걸어야 할 때와 무시해야 할 때가 각각 달라서 판단을 잘못하면 즉사하는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어장관리
어장관리

 

게임 진행 시 핵심적으로 신경 써야 할 규칙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각 수조에는 마리수에 맞는 정확한 양의 먹이를 줄 것
  • 곰치가 보이는 수조에는 절대 올라가지 말 것
  • 사람을 따라 하는 물고기(문어)에게는 관심을 주지 말 것
  • 보고(복어형 생물)에게는 반드시 계속 말을 걸어 폭발을 막을 것
  • 심의어간의 거대 수조를 들여다보지 말 것

마지막 항목이 배드 엔딩과 진 엔딩을 가르는 분기점입니다. 제가 처음에 그냥 이벤트인 줄 알고 들여다봤다가 베드 엔딩을 봤는데, 그게 당시엔 정말 의도인지 모를 만큼 자연스러운 공포 연출처럼 느껴졌습니다.


진 엔딩 분기와 게임의 아쉬운 점

진 엔딩을 보려면 심의어간에 등장하는 물고기들을 모두 만족시켜야 합니다. 거짓말하는 물고기를 찾는 퍼즐, 블로피시(복어류)에게 예쁘다고 말해주기, 치메라(기형 합성 어류)의 문 열어주기 요청 들어주기, 갈치의 머리와 꼬리 위치 바꿔주기 등이 그 조건입니다. 여기서 치메라(Chimera)란 두 종류 이상의 유전자가 혼합된 개체를 뜻하는 생물학 용어로, 게임에서는 비공개 구역에 격리된 기형 어류를 지칭합니다.

 

거짓말 퍼즐은 솔직히 설명이 좀 더 명확했으면 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파란색 물고기가 오답이라고 말하는 쪽과 정답이라고 말하는 쪽이 동시에 있어서 논리적 모순을 찾는 구조인데, 텍스트만으로 어떤 물고기가 어떤 색인지 연결이 잘 안 됩니다. 그림판까지 꺼내서 정리해봤을 정도니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서 한 번쯤 막히실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아쉬웠던 건 심의어간에서 거대 수조를 바라보면 안 된다는 지침이 진 엔딩의 핵심 조건임에도 그 무게감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쯔구르 공포게임 특성상 모든 상호작용을 시도해보게 되어 있어서, 그걸 보는 순간 게임이 끝나버리는 구조는 좀 더 시각적·텍스트적 경고가 강해야 했다고 봅니다.


이브와 엘리시온 아쿠아리움을 좋아했다면

어장관리는 이브(Eve), 죠시코우세이, 아쿠아리움은 춤추지 않아 같은 2010년대 쯔구르 공포게임의 감성을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이런 장르를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분명히 익숙하고 반가운 감정이 들 겁니다. 저도 그 시절 게임들을 꽤 좋아했는데, 직접 해보니 추억이 확실히 올라오더군요.

 

인디 게임 장르로서 한국 인디 호러 씬(Scene)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띱니다. 여기서 인디 씬이란 대형 퍼블리셔 없이 개인 또는 소규모 팀이 독립적으로 게임을 개발·유통하는 생태계를 의미합니다. 게임잼(Game Jam)이라는 제한된 기간 내 게임을 완성하는 행사 형식이 이러한 소규모 창작의 발판이 되고 있는데, 실제로 국내 게임 개발 교육 기관과 인디 커뮤니티의 활성화가 이 흐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수족관이라는 소재를 호러 문법으로 풀어낸 시도 자체는 분명히 신선합니다. 수족관은 본래 생물 다양성 교육과 해양생태계 보전 인식 제고의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국내에만 수십 개의 공인 수족관이 운영 중입니다(출처: 해양수산부). 그 친숙하고 안전한 공간을 무대로 격리된 이종 어류와 저주를 배치한 설정이 게임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만들어냈습니다. 비슷한 분위기를 더 즐기고 싶으신 분들께는 나폴리탄 괴담 마이너 갤러리의 엘리시온 아쿠아리움, 홉스 해양생물 연구소 시리즈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어장관리는 완성도 면에서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지만, 게임잼 출품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잘 만든 작품입니다. 플레이 타임은 약 30분으로 부담이 없고, 수족관 테마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 생태학적 공포 요소를 잘 녹여냈습니다. 쯔구르 특유의 감성이 그리우신 분, 인디 호러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 직접 해보시길 권합니다. 정어리가 정어리가 되는 결말, 생각보다 꽤 소름 돋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Ughkdwqo-zE&t=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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