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들고 "뭐 이 정도야" 하고 서랍에 쑤셔 넣은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혈당 수치가 높다는 소견이 매년 나왔지만 당뇨까지는 아니니까 괜찮겠지 하고 그냥 넘겼습니다.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고기 즐기면서, 정작 몸이 보내는 신호는 철저하게 무시했습니다. 결국 2023년 2월, 서울대병원 장진영 교수님 집도 하에 췌장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저를 췌장암 고위험군으로 만든 것들
직접 겪어보니 고위험군이라는 말이 얼마나 현실적인 경고인지 뼛속으로 느꼈습니다. 저는 흡연, 음주, 육류 위주 식단, 탄산음료를 입에 달고 살았고, 거기에 만성 스트레스와 불규칙한 수면까지 쌓여 있었습니다. 하나만으로도 위험한데 그것들을 전부 갖추고 있었던 셈입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흡연만으로도 췌장암 발생률이 1.7배 올라갑니다. 여기에 비만과 당뇨가 겹치면 위험도가 각각 두 배씩 곱해지는 구조라, 세 가지를 동시에 갖출 경우 단순 계산으로는 여덟 배가 나와야 하지만 실제로는 10배 이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처럼 혈당 수치가 높은 경우, 특히 60세 이후에 새로 당뇨가 발병하면서 체중까지 빠진다면 췌장암 발생 확률이 일반인 대비 100배 수준까지 치솟는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췌장 MRI를 3년 연속으로 찍어볼 것을 권하는 전문가 의견도 있습니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췌장암 관련 모든 위험 요인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군 위험 요인은 흡연, 체지방, 그리고 큰 키 순서입니다. 여기서 1군이란 인과관계가 충분히 입증된 최상위 위험 요인을 의미합니다. 야간 교대 근무는 2군 위험 요인으로 분류되는데, 2군이란 인과관계는 아직 완전히 확정되지 않았지만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요인을 뜻합니다. 수면 부족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늘리고, 그것이 복부 지방 축적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있어 간접적 영향은 충분히 존재한다고 봅니다(출처: 국제암연구소).
췌장암 위험을 높이는 주요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흡연 (발생률 1.7배 상승, 청소년기 흡연 시 더 치명적)
- 복부 비만 및 체지방 과다 (췌장지방증 유발 가능성)
- 만성 췌장염 (일반인 대비 8~16배 위험 상승)
- 새롭게 발병한 당뇨 + 체중 감소 동반 시 (위험도 100배 수준)
- 야간 교대 근무 등 불규칙한 생활 패턴
전조증상이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착각인지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많은 분들이 등 통증이 췌장암의 전조증상이라고 알고 계신데, 실제로는 등 통증으로 췌장암을 조기 발견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췌장암 환자 전체를 통계로 보면 등 통증을 경험한 비율이 약 1%에 불과하고, 반대로 등 통증 환자 전체 중 원인이 췌장암인 경우는 1% 미만입니다. 그러니 등이 아프다고 췌장암을 걱정하기보다, 오히려 아무런 증상이 없는 상태에서도 위험 요인이 쌓이고 있다는 점을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
황달(jaundice)이 그나마 의미 있는 신호로 꼽히는데, 여기서 황달이란 담즙이 혈액으로 역류하면서 피부와 눈 흰자위가 노랗게 변하는 증상을 말합니다. 췌장두부(두부, 췌장의 머리 부분)에서 담도를 건드리는 위치에 암이 생겼을 때 나타납니다. 점토색 변이나 진한 소변이 먼저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도 담즙 흐름이 막히는 신호입니다. 하지만 황달로 췌장암을 발견했다고 해도 대부분은 이미 3기 이상으로 진행된 상태입니다.
그보다 실질적인 신호는 새로 발병한 당뇨, 특히 약으로 잘 조절되던 혈당이 갑자기 나빠지는 경우입니다. 이럴 때 CA 19-9 검사를 함께 진행하기도 합니다. CA 19-9란 췌장암 환자의 혈액에서 증가하는 종양표지자(tumor marker)로, 암세포가 분비하는 특정 단백질 수치를 측정하는 혈액검사입니다. 다만 혈액검사보다는 영상 검사가 언제나 더 정확합니다. 특히 췌장은 조영제 CT만으로는 초기에 놓치는 경우가 있어, 췌장 MRI를 추가로 찍어보는 것이 권장됩니다.
국가암정보센터 자료에 따르면 췌장암의 5년 생존율은 12~15% 수준으로, 주요 암 중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1기, 2기에 발견될 확률이 30% 이하이고, 70% 이상이 3기 이후에야 발견된다는 통계가 이 낮은 생존율을 설명합니다(출처: 국가암정보센터).
수술 이후, 일상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 1기에 발견했고, PPPD 수술을 받았습니다. PPPD란 유문보존 췌십이지장절제술(Pylorus-Preserving Pancreaticoduodenectomy)의 약자로, 췌장 두부와 담관, 담낭, 소장 일부를 함께 절제한 뒤 남은 장기를 다시 연결하는 대수술입니다. 쉽게 말해 배 안의 장기를 여러 개 동시에 건드리는 수술로, 평균 수술 시간이 10시간을 훌쩍 넘기도 합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회복에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까지 걸린다고 들었는데, 저는 나이가 비교적 젊은 편이기도 하고 수술을 잘 해주신 덕분인지 2개월 만에 식사와 일상생활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수술이 잘 됐다고 안심할 수 없다는 말도 직접 겪어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수술 자체가 면역력을 크게 낮추고, 재발 위험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술과 담배를 완전히 끊었고 식단도 조절하고 있습니다. 퇴사도 했습니다. 이러다 정말 죽겠다 싶을 만큼 스트레스가 심했고, 아프고 나서야 돈보다 건강이 먼저라는 게 뼈에 새겨졌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 결정에 후회는 없습니다. 항암 치료 중인 가족을 곁에서 지켜보면서도 느끼는 건데, 치료가 새로운 일상이 되는 순간 그 일상 자체에 감사해지더라고요.
췌장암은 안 걸리는 것이 최선이고, 걸리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흡연, 과음, 비만, 불규칙한 수면. 하나하나는 작아 보여도 쌓이면 무섭게 달라집니다. 50대 이상 남성이라면 건강검진 시 복부 초음파나 복부 CT를 꼭 챙겨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이 그 결심의 작은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과 관련한 사항은 반드시 전문 의료진과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_RyxuOdao0&list=PLZjOkV0EhTLeGYehdkLkhxAHR0XhBzYQm&index=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