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 켰을 때 그래픽 보고 잠깐 멈췄거든요. 맨날 리니지 같은 거 하다가 이런 걸 하니까 눈이 다 정화되는 느낌이랄까요. 루나 필라멘트로 달 기지 전체를 3D 프린팅 한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기가 막혀서, 스토리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엔딩까지 와 있었습니다.

첫인상: 그래픽과 세계관이 만들어낸 몰입감
처음 게임을 시작했을 때 제가 직접 느낀 건, 좋은 그래픽이 뭔지 몸으로 알게 된다는 겁니다. 빛 표현 하나, 그림자 하나가 다르더라고요. 4070 Ti를 가지고 있으면서 맨날 똥게임만 돌리다가 이 게임 켰을 때 그래픽카드가 처음으로 일하는 느낌이 났습니다. 약간 미안하기도 했을 정도였어요.
세계관 설정 자체도 꽤 신선합니다. 루나 필라멘트(Luna Filament)란 달에서 발견된 특수 광물 루넘을 정제해 얻는 물질로, 물체의 정보만 있으면 무엇이든 출력할 수 있는 기반 소재입니다. 여기서 루나 필라멘트란 단순한 SF적 소재가 아니라, 게임 안 전투 시스템과 세계 붕괴 원인, 그리고 적 보스 설계에까지 전부 연결되는 핵심 개념입니다. 이 하나의 소재로 기지 건설, 로봇 제작, 심지어 도시 전체를 출력하는 대규모 실험까지 연결했다는 게 창작 설정으로서 상당히 탄탄합니다.
전투 시스템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오버드라이브 프로토콜(Overdrive Protocol)입니다. 오버드라이브 프로토콜이란 해킹 게이지가 가득 찼을 때 다이에나가 주변 적의 장갑을 일시에 강제 개방하고 동작을 정지시키는 기술로, 이 짧은 시간 안에 플레이어가 집중 공격을 넣어야 합니다. 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쾌감 있는 구조인데, 보는 입장에서는 퍼즐 풀듯 반복되는 해킹 장면이 계속 나오다 보니 박진감이 좀 떨어져 보일 수 있다는 게 아쉬운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프레그마타(Pragmata)가 새로운 전투 경험을 만들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실제로 직접 해보니 손이 바쁘고 생각도 해야 해서 꽤 재밌었습니다. 다만 게임 방송이나 유튜브로 볼 때 그 재미가 화면에 그대로 전달되기는 어려운 구조입니다.
다이에나 분석: 완벽함이 오히려 증명하는 것
제가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건 다이에나라는 캐릭터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귀엽다, 잘 만들었다, 이런 느낌이었는데 게임이 진행될수록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다이에나는 시종일관 착하고, 밝고, 빠르게 성장하고, 휴를 잘 따릅니다. 아이 특유의 떼쓰는 장면도 없고, 상황이 불리해도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오히려 "이 아이는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게임 내내 따라다닙니다. 아이를 키워본 입장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실제 아이는 훨씬 입체적이거든요.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설계상의 실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프레그마타(Pragmata)는 사용자 정의 가능한 AI 안드로이드라는 개념으로, 인간이 사랑받도록 설계한 존재입니다. 다이에나가 DI03367, 즉 일곱 번째 프레그마타라는 설정과도 맞물립니다. AI가 소수이고 인간이 다수인 사회에서 그 AI는 인간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져야 생존할 수 있다는 논리는 꽤 현실적인 사고 실험이기도 합니다.
게임이 보여주는 다이에나의 완벽함은 역설적으로 그녀가 AI라는 걸 가장 잘 증명하는 장치입니다. 반면 에이트(Eight)는 아버지의 분노를 그대로 이식받아 지구를 멸망시키려 했지만, 그것조차 본인의 감정이 아닌 기계적 사명감에 가까웠습니다. 이 두 캐릭터를 나란히 놓으면 "AI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꽤 진지하게 묻고 있습니다.
AI와 인간성의 관계를 다루는 이 같은 주제는 학술적으로도 활발히 논의됩니다.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 즉 HRI(Human-Robot Interaction)에 관한 연구들이 인간이 AI 캐릭터에 감정이입하는 메커니즘을 꾸준히 분석하고 있습니다(출처: MIT Media Lab).
다이에나가 마지막에 한마디로 "I'm ready"라고 하는 장면이 왜 그렇게 여운이 남는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우리가 그 아이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그 아이도 알고 있다는 거니까요.
후속작 전망: IP 확장 가능성과 남겨진 떡밥들
엔딩 보고 나서 정리한 생각은 이겁니다. 이 게임은 완성된 작품이지만 동시에 프롤로그처럼 보입니다.
프랜차이즈(Franchise)란 단일 IP를 기반으로 다수의 작품과 미디어로 확장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캡콤이 바이오하자드, 데빌 메이 크라이 같은 장기 IP를 운용해 온 방식을 보면, 프레그마타가 그 경로를 따를 가능성이 꽤 높아 보입니다.
남겨진 설정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다이에나(DI03367) 이전 여섯 명의 프레그마타 이야기가 전혀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 달 지진이 우연인지, 델파이 코퍼레이션(Delphi Corporation)의 의도였는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 휴 윌리엄스가 지구로 돌아왔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루나 필라멘트 기술을 포기할 리 없는 델파이의 다음 행동이 남아 있습니다.
- 지구에서의 다이에나, 즉 완벽한 AI가 인간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 통째로 열려 있습니다.
제가 직접 엔딩까지 보면서 느낀 건, 이 게임이 무언가를 완전히 닫지 않으려 했다는 겁니다. 특히 델파이라는 기업 설정은 바이오하자드의 엄브렐라 코퍼레이션과 구조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기술 기업이지만 실제로는 윤리적으로 막장인 의사결정을 반복하고, 결국 대형 사고를 치는 구조요. 이 패턴은 후속작에서 거대한 악역으로 소환될 여지가 충분합니다.
게임 산업 전체적으로도 스토리 중심의 단편 패키지 게임이 IP 확장 전략의 기반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스토리 기반 싱글플레이 게임의 브랜드 인지도가 후속 콘텐츠 구매 전환율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프레그마타가 잘 팔려야 다이에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는 그다음을 보고 싶습니다.
프레그마타는 짧지만 깔끔하고, 평이해 보이지만 따라가다 보면 생각할 거리가 꽤 많이 남는 게임이었습니다. 엔딩 이후에도 다이에나가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계속 머릿속에 맴돌더라고요. 후속작이 나온다면, 사춘기를 맞이해서 한 번쯤 미운 짓도 하는 다이에나를 보고 싶습니다. 그래야 진짜 인간다워지는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