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무료 게임이 이 정도 완성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처음엔 믿기지 않았습니다. 프로스트레인은 기후 붕괴로 얼어붙은 세계에서 열차를 몰아 생존자들을 약속의 땅까지 데려가는 전략 게임입니다. 승객의 행복도가 0이 되는 순간 즉시 게임 오버, 그 긴장감이 처음부터 끝까지 손을 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100일 동안 게임의 모든 역들을 순회하며 최대한 승객들을 모으고 최대한 행복하게 만든 후 약속의 땅으로 안내하는 것을 목표로 시작하였습니다.
설국열차를 닮은 세계관, 그런데 더 복잡하다
일반적으로 게임의 세계관은 플레이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지만, 프로스트레인은 다릅니다. 세계관이 게임의 파벌 시스템과 직결되어 있어 배경을 이해할수록 전략의 깊이가 달라집니다.

이 게임의 배경은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로 문명이 붕괴하면서 시작됩니다. 인류는 두 가지 생존 방안을 마련했는데, 하나는 인공 온실 효과로 거주 가능한 땅을 만드는 약속의 땅 프로젝트였고 다른 하나는 무한 동력 엔진을 탑재한 열차를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약속의 땅 프로젝트는 오염으로 인해 연구진 전원이 사망하며 실패로 끝났고, 열차는 계획보다 많은 무임승차자들이 탑승하면서 만성적인 자원 부족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열차 안에는 여러 파벌이 형성됩니다. 앞칸에는 총보급 관리국, 붉은 서리 기사단, 퍼스트 클래스가 자리를 잡았고, 뒤칸에는 연료와 망치 비밀 결사와 엔진의 자녀들이 세력을 키웠습니다. 여기서 엔진의 자녀들은 게임 내 세력 특성(Faction Trait) 중 하나로도 등장하는데, 세력 특성이란 같은 파벌 계열의 열차칸을 일정 수 이상 모았을 때 발동되는 시너지 효과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같은 편끼리 뭉칠수록 더 강해지는 구조입니다.
배경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스토리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부패한 전대 기관사를 몰내고 새롭게 제가 기관사로 부임하였습니다. 전대 기관사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승객들의 행복도는 고작 100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관사로서 승객들의 행복도가 떨어지지 않게 하며 서쪽에서 불어노는 폭풍을 피해 약속의 땅까지 이들을 수송해야 했습니다. 저는 열차를 확인 후 열차가 이동할 경로를 지정한 뒤 드디어 첫 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승객이 2명뿐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승객들의 행복도가 떨어지는 정도가 심해지기에 행복도를 늘릴 방법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저의 기관사로서의 능력이 커질수록 승객들과 열차칸을 더 많이 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덱빌딩 시너지, 알고 보면 생각보다 정교하다
일반적으로 이런 류의 카드 기반 전략 게임은 초반에 나오는 카드를 그냥 좋아 보이는 걸로 고르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저도 처음엔 그렇게 접근했다가 클리어까지 6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게임의 핵심은 덱빌딩(Deck Building)에 있습니다. 프로스트레인에서는 역에 도착할 때마다 열차칸 카드를 보상으로 받고, 같은 카드를 두 장 합치면 업그레이드(티어 상승)가 가능합니다. 카드 티어는 동색(1티어), 은색(2티어), 금색(3티어), 흰색(4티어)으로 구분됩니다.
덱빌딩이란 게임을 진행하면서 카드를 획득·조합하여 자신만의 카드 덱을 구성해 나가는 장르적 메커니즘입니다.
제가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전략은 총보급 관리국 시너지와 엔진의 자녀들 시너지를 함께 굴리는 조합이었습니다. 총보급 관리국 시너지는 행복도 생산 주기를 단축시켜 주는데, 여기서 생산 주기 단축이란 원래 10초마다 행복도를 생산하던 것을 8초, 6초로 줄여주는 효과입니다. 쉽게 말해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이 벌 수 있게 해주는 거죠. 한편 엔진의 자녀들 특성은 열성(Zeal)이라는 별도 포인트를 쌓아줍니다. 열성이란 시간이 지날수록 누적되며 나중에 행복도로 전환되는 일종의 자원입니다.
이 두 가지가 선전소 카드와 결합될 때 폭발적인 시너지가 발생합니다. 선전소 4단계 기준으로 승객이 들어오면 현재 열성의 33배를 행복도로 생산하는데, 열성이 430 이상 쌓이면 주기마다 행복도를 14,000 이상 찍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저는 이 조합을 완성한 이후 65일 차에 행복도 100만을 돌파했고, 108일 차 엔딩 시점에는 20,743,353이라는 숫자로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행복도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던 이유가 생존 7일차에 첫 랜드마크를 도착하게 되는데 거기엔 열차를 떠나 주변을 탐험하던 탐험대가 얼어붙은 채로 남겨져 있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들이 남기고 간 물자를 챙기는 일뿐이었습니다. 아마도 행복도가 0으로 떨어지면 저도 저렇게 얼어붙은 시체가 될 운명이라고 생각되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차를 운행했습니다.
덱빌딩할 때 하나의 팁을 드리자면 자신이 원하는 시너지를 선택하고 거기에 맞는 카드를 선택할텐데 가끔 저에게 필요 없는 카드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받아놓았다가 나중에 버리시면 됩니다. 저도 처음에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자리만 차지하니까 휴지통에 버렸는데 일정량 버리니까 보상으로 새로운 카드 보급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손에 있는 카드를 정리하면서 나에게 맞는 카드를 얻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열차를 운행할 때 주의할 점은 약속에 땅에 다가갈수록 점점 게임에서는 패널티를 부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상황이 와도 버틸 수 있도록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덱 구성 시 참고할 만한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초반에는 총보급 관리국 시너지로 행복도 생산 주기를 먼저 줄인다
- 중반에는 동력(Power) 특성으로 열차 속도를 올려 더 많은 역을 방문한다
- 후반에는 엔진의 자녀들 + 선전소 조합으로 행복도 생산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린다
한 가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카드 설명이 꽤 불친절한 편입니다. 예컨대 세트 조건의 차량 수가 같은 종류만 해당하는지 서로 다른 종류를 섞어도 되는지 처음에는 전혀 파악이 안 됐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부분은 실제로 써보기 전까지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개발진이 이 피드백을 적극 수용한다면 초보 플레이어 유입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엔딩까지 가는 길, 예상보다 험난하고 예상보다 뭉클하다
일반적으로 무료 인디게임은 엔딩이 허술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프로스트레인의 엔딩은 그 기대를 꽤 뛰어넘었습니다. 특히 오염 지대를 통과하며 연구원들의 지하 실험실을 발견하는 장면, 그리고 마침내 눈 위에 서 있는 나무를 보는 순간은 단순한 목표 달성 이상의 감정을 주었습니다.
게임 후반부에는 오염 지대 페널티가 초당 행복도를 70씩 감소시키며, 약속의 땅에 가까워질수록 총보급 관리국 세력의 부패와 각 파벌 간 내분까지 겹칩니다. 이 구간에서 행복도 생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꽤 빠르게 무너집니다.
인디 게임 전문 매체의 분석에 따르면 이처럼 자원 관리와 세력 균형을 동시에 요구하는 설계는 로그라이크 전략 장르 중에서도 높은 완성도로 평가받는다고 합니다(출처: Steam 공식 페이지).
하지만 저는 모든 역을 순회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초반부터 행복도 생산에 주력했고 그 덕분에 37일 차부터 역주행 전략을 시행할 수 있었고 서쪽으로 돌아가 들르지 못한 역들을 전부 파밍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바로 다음날인 38일 차에 눈폭풍을 만났지만 저는 이미 행복도가 떨어지는 양보다 생산하는 양이 훨씬 많았기에 무리 없이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역을 순회한 덕분에 기관사 레벨을 최대치까지 올렸고 승객도 최대로 태울 수 있었습니다. 이 판단이 꽤 유효했는데, 열차 속도가 빠를수록 폭풍보다 앞서 달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만큼 더 많은 역에서 카드 보상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시너지 2개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선택하였는데 다른 시너지들을 이용한 플레이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었습니다. 중반 이후 행복도 수치가 흰색과 빨간색으로 번갈아 깜빡이는 UI 연출은 눈에 꽤 부담스러웠고, 광과민성 뇌전증(Photosensitive Epilepsy)처럼 시각적 자극에 민감한 조건을 가진 플레이어에게는 잠재적인 접근성 문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접근성 옵션 추가 요청은 개발진에게도 충분히 전달할 가치가 있는 피드백이라고 생각합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광과민성 뇌전증이란 빠르게 깜빡이는 빛이나 패턴에 의해 발작이 유발될 수 있는 신경학적 상태를 말합니다.
클리어 화면에 "Stage Completed"라는 문구가 표시된 것도 눈에 띄었습니다. 향후 새로운 맵이 추가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기는 대목이었습니다.
설국열차 세계관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게임은 거의 취향 저격 수준입니다. 처음엔 6시간 가까이 걸려 겨우 클리어할 만큼 시너지와 게임의 구조를 이해하는 학습 시간이 필요했지만, 시너지를 이해하고 나면 그 이후는 전략을 직접 설계하는 재미가 살아납니다. 완전 무료인데 이 정도 완성도라는 점이 아직도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덱빌딩 전략 게임에 처음 입문하는 분이라면 프로스트레인이 꽤 좋은 시작점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