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게임을 찾기 위해 스팀 라이브러리를 한참 뒤지다 눈에 띄는 게임이 하나 있어 플레이한 게임, 프로스트 펑크. 빙하기가 덮친 세상에서 스팀펑크 기술로 살아남는다는 설정, 그 한 줄 설명에 끌려 별 고민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실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습니다. 이 게임 개발사가 어디인지 말이죠.
얼어붙은 세계,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게임의 배경은 19세기 말입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한 영국은 증기기관을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의 정점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증기기관이란 석탄을 연소시켜 발생하는 수증기로 기계를 작동시키는 동력 장치로, 당시 공장과 선박, 철도 전반에 걸쳐 문명의 근간이 되었던 기술입니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로 지구 전체의 기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한여름에 서리가 내리고 사막에 폭설이 쏟아지면서 세계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집니다.
각국 정부는 북부 탐사대를 파견하고 열원 확보를 위한 연구에 나섰지만, 기근과 혼란 앞에 하나씩 무너져 내렸습니다. 결국 대영제국은 드레드노트(Dreadnought)를 동원해 피난민들을 북쪽으로 이송하기로 결정합니다. 드레드노트란 20세기 초 등장한 대형 전함의 대명사로, 게임에서는 거대한 증기 선박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얼어붙은 바다를 건너고 석탄이 바닥난 선박을 버리며 걸어서 도달한 곳, 그곳이 바로 뉴 런던의 시작점입니다.
생존전략의 핵심, 발전기와 자원관리
뉴 런던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발전기를 가동시키는 것입니다. 발전기는 도시 전체에 열을 공급하는 핵심 시설로, 이것이 꺼지는 순간 주민 전원이 동사합니다. 석탄 수집, 진료소 건설, 식량 확보, 이 세 가지가 초반 생존전략의 뼈대를 이룹니다.
플레이했을 때, 가장 당황스러운 건 주민들의 사고방식입니다. 극한의 추위가 밀려오기 직전에 발전기 업그레이드를 완료해야 하는 상황인데, 6시가 되면 칼같이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저 혼자 발만 동동 구르면서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되는지 찾다가 연장 근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연장 근무를 시키면 불만(Discontent) 수치가 올라가는데. 여기서 불만 수치가 최대치가 돼버려서 결국 게임 오버 당했습니다. 여기서 불만 수치란 주민들의 집단적 불신과 피로도를 나타내는 게임 내 지표로, 희망(Hope) 수치와 함께 도시 안정성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입니다.

자원관리의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석탄은 발전기 가동과 건물 건설 모두에 소비되므로 초반부터 채굴 인력을 충분히 배치해야 합니다.
- 식량은 날씨 변화에 따라 소비 속도가 달라지며, 배급제 전환 시점을 놓치면 걷잡을 수 없어집니다.
- 자동화 기계(Automaton)를 도입하면 24시간 노동이 가능해져 인력 부담이 크게 줄어듭니다.
- 온실(Greenhouse)을 조기에 건설하면 극한 기온에서도 식량 생산이 가능해집니다.
처음엔 자원을 모아서 기술을 개발하고 사람들이 살기 좋게 만들자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주민들의 심리 상태가 자원 효율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구조였습니다. 여러분도 게임을 하시다보면 저처럼 깊은 분노가 느껴질 때가 있을 겁니다.
질서냐 신앙이냐, 통치 방식의 선택
게임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법률 시스템입니다. 윈터홈(Winterhome)의 몰락 소식이 전해지면서 뉴 런던 내부에서도 런던으로 돌아가자는 세력, 이른바 '런던파'가 형성됩니다. 이때 플레이어는 두 가지 통치 방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바로 질서(Order)냐, 신앙(Faith)이냐입니다.
저는 질서를 선택했습니다. 대영제국이 그랬던 것처럼 규율과 단결만이 살 길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경비초소를 설치하고 자경단을 배치해 치안을 유지하고, 선전탑(Propaganda Tower)을 세워 노동 효율을 끌어올렸습니다. 여기서 선전탑이란 특정 구역 내 시민들의 작업 효율과 사기를 올려주는 건물로, 현실 역사에서 전체주의 국가들이 활용한 심리 통제 방식을 게임에 반영한 장치입니다. 효과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아동 노동을 위험 작업장에 투입하고, 가망 없는 환자를 비료로 전환하는 선택지를 마주했을 때는 잠시 멈추게 됩니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이런 선택지들을 보면 생존과 인권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제작사가 얼마나 악질인지도 새삼 느낍니다. 이건 실제로 플레이어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구조입니다. 11 bit studios가 이전작에서부터 쌓아온 방식이 여기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출처: 11 bit studios 공식 사이트).
아쉬운 점, 그래도 해야 할 이유
게임의 설정과 분위기는 훌륭합니다. 하지만 두 번째 플레이부터는 다른 느낌이 납니다. 각 시나리오의 탐험 지역이 고정되어 있고, 이벤트 발생 패턴도 대부분 반복됩니다. 이른바 최적 테크트리(Tech Tree)가 금세 파악되는데, 여기서 테크트리란 기술 연구의 순서와 의존 관계를 나타내는 구조로, 최적 경로가 드러나면 플레이의 다양성과 긴장감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디스 워 오브 마인에서 노부부 저택이 쉬운 파밍 장소로 굳어지던 순간과 비슷한 현상입니다.
커스텀 미션이 있긴 하지만, 이 문제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합니다.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협회(ESRB)의 분류 기준으로 이 게임은 성숙한 전략 시뮬레이션에 해당하며, 단순 반복 플레이보다는 처음 접하는 순간의 몰입감이 핵심 경쟁력입니다(출처: ESRB 공식 사이트). 그래도 처음 한두 판의 긴장감은 어떤 게임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습니다.
프로스트펑크를 시리어스 게임, 즉 사회 문제를 체험하게 하는 교육적 게임으로 접근하면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수하게 생존 시뮬레이션으로 즐긴다면, 이만큼 완성도 높은 게임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처음 플레이한다면 어떤 법률을 선택할지, 누구를 희생시킬지 고민하는 그 순간들을 충분히 즐겨보시길 권합니다. 자동화 기계를 도입하고 나면 한결 숨통이 트이니, 그 전까지의 고통은 조금만 인내해 보시길 바랍니다. 한 번쯤은 꼭 플레이해봐야 할 게임이라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