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 Hollow Knight 같은 예쁜 그림체를 보며 기대감을 안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판단이 정말 잘했다는 것을 85시간 플레이와 전 도전과제 달성이 증명합니다. Have a Nice Death는 죽음 주식회사의 CEO '데스'가 통제 불능이 된 부하들을 직접 정리하러 나서는 이야기를 담은 2D 액션 로그라이크 게임으로, 번아웃 직장인의 설움을 사신에게 투영한 독특한 설정이 인상적인 게임입니다.

죽음 주식회사라는 세계관, 그리고 전투의 기반
이 게임의 배경은 꽤 공을 들인 세계관입니다. 태초부터 존재하던 사신 '데스'는 업무 과부하를 해소하기 위해 '소로우(Sorrow)'라는 부하들을 전 세계에 배치해 영혼 수확을 맡깁니다. 소로우란 데스가 창조한 죽음의 대리인으로, 각자 산업공해, 질병, 중독, 전쟁 같은 사망 원인을 담당하는 간부급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부하들이 점점 오만해져 통제 불능 상태가 되고, 결국 데스가 직접 회사 내부를 순회하며 기강을 잡으러 나서는 것이 게임의 핵심 줄기입니다. 이 설정을 생각하면서 게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게임의 배경이 각 구역의 분위기와 보스 디자인에 일관되게 녹아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전투 시스템의 핵심은 낫, 클로크(Cloak), 마법, 그리고 저주(Curse)의 조합입니다. 여기서 클로크란 데스가 두르는 망토로, 장착 시 고유한 패시브 효과와 업그레이드 경로를 제공하는 일종의 방어 및 보조 장비를 의미합니다. 낫은 7종, 클로크는 20종 이상, 마법은 약 40종이 있으며 각각 고유한 업그레이드 트리를 가집니다. 저는 처음에 낫 위주로 플레이했는데, 실제로 딜 효율은 클로크와 마법 쪽이 훨씬 높았습니다. 낫이 기본기라면 클로크와 마법은 빌드의 중심축이라고 보면 됩니다.
진짜 게임의 재미는 저주 시스템에서 나옵니다. 저주(Curse)란 이름과 달리 사실상 버프로 작용하는 런 강화 요소로, 현재 게임에 150종 이상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데미지를 퍼센트 단위로 증폭하거나, 매 공격마다 번개나 화염을 추가로 발사하거나, 나비 떼를 소환해 다중 히트를 내는 저주들이 특히 강력합니다. 이것들이 다중 히트 마법이나 클로크와 시너지를 이루면 어떤 보스도 수초 만에 제압할 수 있는 빌드가 완성됩니다. 로그라이크 장르에서 빌드 시너지란 개별 능력치보다 여러 요소가 조합될 때 폭발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을 말하는데, Have a Nice Death는 이 부분을 상당히 잘 만든 것 같습니다.
이 게임의 뉴비분들에게 제 경험을 바탕으로 빌드를 구성할 때 고려할 핵심 요소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낫: 기본 공격의 모션과 범위를 결정하며, 7종 중 어느 것이든 충분히 활용 가능
- 클로크: 빌드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패시브 중심의 장비, 20종 이상
- 마법: 특정 저주와 조합 시 폭발적인 딜 상승, 약 40종
- 저주: 런마다 무작위로 등장하며 빌드의 완성도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 150종 이상
아트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아쉬운 텍스트
Have a Nice Death의 아트 스타일은 제가 이 게임을 시작하게 만든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전반적으로 채도를 낮춘 회색 톤에 약간의 붉은색과 파란색이 섞인 팔레트를 사용하는데, 사무실이라는 공간 특유의 무기력하고 칙칙한 분위기를 색감으로 정확하게 표현해 냅니다. 이 미적 선택이 Hollow Knight와 자주 비교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스팀 리뷰를 보니 저처럼 Hollow Knight와 비교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애니메이션 완성도도 상당합니다. 산업공해 부서 실장 Gordon Grimes의 기름덩이 주먹 공격이나, 질병 부서 실장 Hector Krank의 거대 집게발 동작이 매우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얼굴도 없는 캐릭터들이 모션만으로 개성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게임의 미적 하이라이트는 단연 진 최종 보스 '라이프(Life)'전입니다. 그 전까지 Death Inc. 내부의 무채색 공간만을 돌아다니다가 갑자기 채도 높은 생명의 색채가 쏟아지는 장면은, 처음 봤을 때 잠시 멍해질 정도였습니다. 이 연출 하나만으로 최종 보스전의 체감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제작사가 이 게임의 모든 것이 그 순간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텍스트 분량이 상당하고, Hollow Knight처럼 목소리 없이 대화 효과음(채터링)만 사용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개인적으로 매 전투마다 긴 대화를 읽어야 하는 게 피로하게 느껴졌습니다. 게임이 프랑스어로 먼저 개발된 후 번역되었기 때문인지 유머의 뉘앙스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트와 애니메이션에서 느껴지는 개성이 대화에서는 충분히 살아나지 못한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이건 저만의 느낌일 수도 있는데, 텍스트보다 아트가 더 마음에 든다고 보는 분들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게임 난이도와 도전과제의 고통
로그라이크 장르 중에서도 Have a Nice Death의 난이도 곡선은 꽤 가파른 편입니다. 로그라이크란 런마다 캐릭터 능력치가 초기화되고, 메타 진행(Meta Progression) 없이 순수한 플레이어의 숙련도와 지식으로 성장해야 하는 장르를 말합니다. 이 게임도 메타 진행이 거의 없기 때문에, 초반에는 보스에게 반복적으로 죽으면서 패턴을 외워야 합니다. 일반 적들은 스턴이 잘 걸리고 무난하게 처리되지만, 보스는 몇 번의 공격만으로 죽을 만큼 공격력이 높습니다. 특히 진 최종 보스인 라이프전은 방어적 저주를 갖추지 않으면 실수 몇 번만으로도 체력이 바닥납니다.
로그라이크 장르에서 적절한 튜토리얼과 난이도 온보딩(onboarding)은 초기 이탈률을 크게 낮추는 핵심 요소입니다(출처: Game Developers Conference). 실제로 Have a Nice Death의 도전과제 완료율은 약 0.3% 수준에 불과한데, 이는 초반 난이도 장벽이 상당하다는 방증입니다. 이지 모드를 좀 더 완만하게 설계하고, 각 구역의 고유 적 수를 현재 5종에서 7종 이상으로 늘린다면 초보자 접근성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입니다.
도전과제 달성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저주 해금 시스템의 불투명함입니다. 게임은 저주의 선행 조건, 즉 특정 저주를 얻기 위해 다른 저주가 먼저 필요하다는 사실을 어디에도 명시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마지막으로 해금한 저주 'Drowning Fire'는 'Chillash!'라는 다른 저주를 선행으로 요구했는데, 저주 설명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었습니다. 인디 게임의 소규모 커뮤니티와 불완전한 위키, 그리고 게임 자체의 설명 부재가 겹쳐 100% 완료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85시간을 쏟아부어 전 도전과제를 달성하고 나서 드는 생각은 하나입니다. 이 게임은 충분히 훌륭하고, 그렇기에 아쉬운 부분이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전투의 완성도, 세계관의 독특함, 아트의 아름다움은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처음 플레이하는 분이라면 저주 시스템과 빌드 시너지를 탐구하는 재미에 집중해 보시길 권합니다. 공략 없이 스스로 발견하는 과정이 이 게임의 진짜 묘미이기 때문입니다.